3·1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린 가운데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당에서도 대대적인‘통영만세운동'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올해로 제95주년을 맞는 3·1절 기념행사는 오전 10시 별신굿을 시작으로 김동진 시장을 비롯한 시도의원과 3·1동지회 6·25참전용사회, 통영해병전우회, 통영여성군인회 등과 유족 및 시민들이 대거 참석해 기념식을 갖고 통영만세운동을 세상에 알렸다.
특별히 이날에는 통영만세운동 당시 예기조합의 기생 33명이 금비녀와 반지를 팔아 소복차림으로 시위대열에 동참한 내용과 그로이한 재판과정을 그린 연극퍼포먼스가 열려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그동안 3·1절 기념행사는 원문공원 내에서 조촐하게 진행되다가 피땀 흘려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구국의 고장 통영의 품격에 맞는 3·1운동 기념식과 통영만세운동을 격상시키자는 의견에 따라 2011년부터 강구안 문화마당으로 자리를 옮겨 개최하고 있다.
김동진 시장은 기념사에서 “이 기념일을 맞아 3.1만세 사건의 순국하신 선열들과 그 후손 여러분께 삼가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선인들이 항일운동으로 표시한 숭고한 민족정신을 올바르게 계승발전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허만기 유족대표는 "죽을 수는 있어도 꺾일 수는 없다는 정신으로 왜놈들의 총칼 앞에 맞선 그 숭고한 정신에 눈시울을 적신다. 흉악한 왜구들을 단숨에 집어삼킨 저 바다를 보고 자란 통영인들이 어찌 분개하지 않았겠는가. 통영만세운동은 숭고한 통영의 정신이다. 뿌리 깊게 통영인의 가슴에 파고든 진정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후세에 길이 전해 통영의 새로운 기상이 되게 해야 한다.”고 외쳤다.
‘통영만세운동’은 1919년 3월 8일 경성 배재고에 재학 중이던 진평원이 귀향하면서 허장완, 이학이 등 18 명이 남망산 공원에서 3월 13일 장날에 거사를 결의하였으나 일본인의 밀고로 무산되고 모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이로 인해 허장완 열사는 21세의 나이로 옥사하였고, 이학이 열사마저 고문 후유증으로 곧바로 운명하게 되고 이학이 열사의 시신과 허장완 열사의 시신이 지역별 릴레이 운구가 시작되자 민심이 고조되면서 마침내 허장완 열사의 시신이 강구안으로 들어오던 날 중앙시장부터 독립만세운동의 불씨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3월 13일 유치원 보모인 문복숙 외 2인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이어졌고, 3월 18일부터 통영지역에 조직적인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5천여 명의 장사꾼과 열사들이 체포되어 순직함은 물론 예기조합의 기생 33명도 금비녀와 반지를 팔아 소복차림으로 시위대열에 동참하였을 뿐 아니라, 지식인에서 각계각층의 민초들로 이어지며 봉기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