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통영시 강구안에는 북한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억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통영 출신 신숙자 씨 모녀 구출을 촉구하기 위한 ‘통영의 딸을 구해주세요’라는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를 관심 있게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은 약간의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인권과 평화를 위한 집회'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 집회는 관변단체들의 호응을 얻어서 개최된 것 같이 홍보하고 있었으나 정작 참석자들 대부분은 주최 측인 현대교회의 신도들이었으며 거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과 노인들도 동원되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현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최 측에서 나눠준 흰 티셔츠를 반 의무적으로 입어야 했고, 풍선 등으로 무언가 분위기가 고조된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보이는 건 여느 교회의 집회 같은 분위기였다.
집회의 시작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과 북한의 열악하고 비인도적인 실태들을 알리는 형태로 진행되다가 결국엔 주최자인 방수열 목사에 의해 윤이상 선생을 간첩으로 몰아세우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정치색을 연출하고 말았다.
과연, 이날 집회가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신숙자씨 구출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인지, 아니면 윤이상 선생을 죽이기 위한 집회인지 그 순간부터 의문스런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았다.
이 집회는 사전에 윤이상 선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며 관변단체들의 참석을 공공연히 요구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렸다.
신숙자씨를 '통영의 딸'이라 칭한다면 윤이상 선생은 과연 뭐라 불려야 하나에 수 많은 통영의 딸들과 수많은 통영의 아들들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일방적이든 어쨌든 억울하다고 주장하면 통영의 딸이 되고, 증거가 없어도 간첩 협의가 의심되니 통영의 아들이라 할 수 없다고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신숙자씨는 언제부터 통영의 딸이었는가? 아마도 그녀가 남편에게 버림받지 않았다면 통영의 딸이니 인권 운동이니 하는 소용돌이 속에 이름도 섞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어찌 되었건 통영의 불쌍한 딸이 되게 한 죄만은 이념과 사상 모두를 떠나서 전적으로 가족을 지켜야 하는 그의 남편 오길남 박사에게 있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또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그녀가 통영출신이든 서울출신이든 북한 수용소에서 구해내자는 말에는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 분명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담장을 쌓기 위해 받침돌을 뽑아 윗돌로 다시 엊는 웃지 못할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속칭 통영의 딸을 구하기 위해 통영의 아들을 죽이는 오류를 범하며 이미 망자가 된 윤이상 선생을 두 번 죽이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뭐라 해도 통영은 그들의 부모고 그를 두 번 죽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오길남 박사의 말에는 신빙성이 있는가? 세상의 언론들이 오길남 박사의 일방적인 증언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그 어떤 명확한 증거도 내보이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오길남 박사 가족이 윤이상 선생의 회유에 의해 월북을 했고, 탈북 후에도 권유와 협박을 받았다는 그의 일방적인 주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는 당시 박사학위를 받은 대한민국의 최고의 석학이었다. 과연 그가 음악밖에 몰랐던 윤이상 선생에게 회유될 수 있었을까? 남북의 경제적 논리는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을 테고 어찌 보면 그가 내놓는 분석이 당시 정권의 측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며 또 그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말로만 "그랬다"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그 와중에도 아내와 딸을 북한에 두고 혼자 살기 위해 도망친 비정한 남편과 아버지라는 말이 나올까 전전긍긍해 오다가 이제는 처갓집에 와서 아내와 딸을 구해달라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건은 양자의 증언과 증거가 일치할 때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오 박사가 말하는 윤이상 선생의 회유에 의해 월북했다는 말은 어느 하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작금의 언론들은 특종과 이슈에만 눈이 멀어 있고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기사는 어쨌든 팔린다"가 기본 방침같이 쏟아낸다.
이하는 지난 10월 23일 통영시 강구안에서 현대교회가 주관한 집회에서 오 길남 박사와 통영의 문화예술계 한 관계자가 주고받은 대화내용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날 오 박사는 비굴했다. 연단에 서서 "이제 아내와 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통영시민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라고 짧은 인사만 남긴 채 그는 연단에서 내려왔다.
윤이상 선생에 대해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말들을 쏟아 내리라고 생각했던 기자들의 예상이 안전히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그가 단상을 내려와 군중 뒤편에서 이사람 저사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통영시 문화예술계 한 관계자가 다가서며 오 박사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윤이상 선생의 말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어쨌든 분란이 일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오 박사는“이제 그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며 인사를받았다. 그리고 몇 마디의 말들이 오간 뒤 정중한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진정 윤이상 선생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증거가 있지.”라고 오 박사는 말을 받았고 “그럼 이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 증거를 내놓으면 다 해결될게 아닙니까?”라고 되묻자 그의 말이 참 재밌다.
“지금 증거를 내어 놓을 수는 없지, 다음 정권이 나를 어찌 대할지 모르는 판에 내가 증거를 내어 놓을 수가 없잖아.”라며 어처구니없는 말을 뱉었다.
다시 이런 질문이 이어졌다. “그 말은 분명 증거가 없다는 말이든지 아님, 그동안 정권의 눈치를 봐왔고, 지금도 압력이 있었다고 스스로 시인하는 말이 아닙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금방 얼굴을 붉히며 “요즘은 머리가 많이 아파요 이만” 하면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과연 이 대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오길남 박사, 그가 증거를 가졌든 아니든 분명한 것은 말로만 떠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70이 넘은 나이에도 정권에 눈치를 본다고 스스로 자백했고, 가족을 버릴 만큼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거듭 자백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한 건 진실이 무엇이든 신숙자씨 모녀도 윤이상 선생도 '통영의 딸'이요 '통영의 아들'이라는 건 바뀔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