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한산대첩의 상징인 한산해전에 투자해야 최우수축제가 된다.
지난 12일“전군 출정하라”라는 주제를 내걸고 충렬사 고유제를 시작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린 제54회 통영한산대첩축제가 5일간의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축제는 이미 어제의 역사가 되었고 동분서주하던 한산대첩기념사업회와 우리는 이제 축제평가단의 결과를 기다린다. 평가단의 결과는 곧 냉정하게 날아들 것이지만, 우리는 이미 부분적이거나 전체적이거나 하는 평가를 스스로 내리고 있고, 분분하게 이번 축제의 뒷담화를 하고 있다.
수많은 뒷담화 중에 한산대첩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한산해전 재현에 대한 이야기가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다.
5일 동안 취재를 하면서 올해에 달라진 점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다녔다. 그러다가 지난 15일 한산해전 재현 행사장에서 특별한 학생들을 만났다.
한산해전 재현을 보기 위해 호주 유학 중에 친구가 보내준 핸드폰 영상을 보고 일부러 한산대첩기간에 맞춰 귀국해 통영을 찾았다는 학생과 인터넷과 SNS 영상을 보고 모 대학교 동아리가 단체로 여행을 왔다는 학생들도 만났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인가?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한산해전은 충격이었다. 그들의 한산대첩 축제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펼쳐질 영화‘명량’같은 장면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이날 재현행사를 지켜본 나로서는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느낌과 부끄러움이 교차했다.
학생들의 말은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껏 무심히 생각했던 우리 축제의 핵심적 상징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다. 또한 그 말은 한산대첩축제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말해 한산해전 재현 하나로도 충분한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제시어였다. 통영 앞바다는 이순신공원이나, 동호항, 도남동, 미륵산에서도 훤히 볼 수가 있다. 영화만큼은 못되어도 흉내만이라도 낼 수 있다면 그 장소들은 세상에 가장 큰 객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한산해전 재현은‘이순신장군이 이 바다에서 견내량의 적군을 유인해 학익진으로 싸워 이겼다.’ 라는 단순한 역사성에 집중했다. 그 역사는 이제 전 국민이 다 안다. 학생들은 그런 역사를 듣자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축제는 그 축제의 주제에 맞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첫째 의무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이순신공원에서 한산해전 재현을 시작한 이후부터 한산대첩축제는 급부상했다. 분명 투자할 가치가 넘치는 콘텐츠다..
강구안에 설치한 체험부스나 거리공연, 무형문화재 공연 등은 전국 어디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장면이다. 물론 축제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체험행사와 부대행사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부대행사는 주연이 아니라 분명한 조연이다. 평가단은 조연에 큰 점수는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의 한산해전 재현을 이야기 해보자, 올해 해전을 구경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반 욕설을 쏟아냈다. 한마디로 역대 최고의 졸작이었다는 말이다.
어두운 저녁에 펼쳐졌던 재현을 맨눈으로 식별 가능한 시간대로 조정하고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겠다고 사무국은 발표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엄청난 오류를 불러왔다. 역사성의 외곡과 박진감은 물론 기대감을 시작 전에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작년까지 관람객들은 해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느끼는 기대감 같은 것을 숨기고 이었고 연출의 일부분이었다.
이전의 연출은 일본수군이 견내량에 정박해있었고, 조선수군은 한산도 앞에 정박해 있다가 박진감 있는 효과 음향과 함께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며 유인해 온 일본전함을 이순신공원 앞 바다에서 학익진으로 섬멸하는 전투장면을 연출했다.
연출의 실수는 또 있다. 조선수군의 주력 무기인 화포의 발사장면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어둠이 필요하다. 또한 어선에 깃발 하나 꽂아 군함이라고 알아주라는 식의 어선이 실재감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약간의 장막이 필요했다는 것을 새로 바뀐 연출 담당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올해의 조선 수군은 동호항에 정박해 있다가 순식간에 이순신공원 앞바다로 밀고 나왔다. 이는 한산대첩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그 모양 또한 학익진이라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고, 바다에서 진행되는 해전 과정과 현장 설명이 전혀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해전이 진행되는 도중 생뚱맞은 녹음된 역사 나레이션이 오히려 해전을 망치는 듯했다.
그뿐만 아니다. 해상의 밋밋한 움직임과 장난감 같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거북선은 물론, 유원지에서 볼 수 있는 장난감 불꽃을 이용한 극히 소극적인 전투장면을 연출하다가‘뭔가 하겠지’하는 기대를 하기도 전에 해전은 이미 끝나 버렸다.
긴장감은 시작 전 벌써 사라졌을 수도 있다. 관람객들은 이미 동호항에 대기하고 있는 어선에 깃발 하나 꽂은 조선군선과 일본군선을 이미 보고 있었다. 무대 뒤에 대기한 배우를 관객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창원에서 온 40대 한 관광객은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배가 일본군선인지 조선군선인지 구별도 힘들고 꼭 뉴스에서 본 어민들의 해상 시위 같았어요.” 라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너무나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 통영시민은 “해전이 끝나고 실망감으로 내려오는 머리 위로 폭죽이 무차별로 터지네요. 진짜 해전이 다시 시작되었나 싶어 다시 바다를 내려 봤어요. 그 폭죽을 해전에 이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고 말했다.
한산해전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큰 지를 표현한 말이다. 또 변화하지 못하는 한산대첩축제의 역량을 어디에 쏟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일 수 있다.
나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투자하더라도 한산해전의 모양이 바뀌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54년이라는 이 땅에 몇 안 되는 축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축제의 명분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해마다 초초한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우수 축제란 딱지를 쫓아 갈 것이 아니라, 축우수축제의 딱지가 우리를 찾아오게 해야 한다.
54년이란 역사만큼이나 많은 노하우도 쌓여 있고 축제를 소화해낼 지역단체나 우수한 문화예술계의 인력들도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최고축제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이런 주장을 하고 싶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산대첩축제는 주행사와 부대행사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특정한 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동안 축제에 주제를 정하고 타이틀을 부여해 왔지만, 여느 해도 다라진 모습을 느끼기는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축제는 그 축제가 가지는 독창성과 특수성 한 가지에 집중해야하고 그 특수성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우리나라 최우수 축제의 타이틀을 쥔 축제들을 살펴보면 그 규모가 크지 않다. 하지만 축제가 가진 이름 그 차체가 바로 축제의 주제이고 전체라는 것이다. 머드축제는 머드에, 나비축제는 나비에 모든 컨셉트가 맞춰져 있다.
한산대첩축제의 꽃이 한산해전 재현이라면 과감한 투자는 필수적일 것이다. 몇 가지 놀이 체험코너가 바뀌었다고 축제가 변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보이는 부분부터 투자해야한다. 앞에서 말했듯 영화 같지는 않아도 그런 느낌이라도 보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산해전 재현에 투입된 어선을 군선으로 보이게 하는 연출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많은 경비가 소요되겠지만, 투자의 가치는 충분하고 넘친다. 한 학생이 친구가 보내준 SNS를 보고 외국에서 달려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시대에 맞는 축제의 미래를 준비하자.‘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한산대첩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 영화가 발표되고 나면 한산대첩축제와 한산해전은 급부상할 것이다. 그때도 지금까지의 한산해전 재현 모습으로 관람객의 만족도를 이끌 수 있을까?
올해는 한산대첩기념사업회의 이사진과 사무국 직원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모두가 새 의욕에 충만할 것이다. 새 각오에 새롭고 엉뚱한 발상도 분명 뒤따라야 한다.
이번 취재 중에 축제평가단의 몇 명을 만났다. 올해 축제의 긍정적인 평가에 대한 몇 가지를 말하자면 첫째가 예년보다 교통 혼잡이 적었다는 것이다
시내 각 초등학교에 만든 임시주차장과 강구안 행사장 한 차선을 일방통행으로 대체한 점이 일조 했다는 평이다. 거기에 시민들의 자가용 이용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부분의 개선이라는 점에서 큰 박수를 보낼 만하고 이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
축제평가단에게 잠시 엿들은 이야기로는 강구안 일대의 참여인원이 작년보다 15%가량 많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또한 화려한 연예인 공연을 배제하고 거리 공연과 민속공연 등에 시간을 할애한 점 등을 들었다.
특히‘해병대통영상륙작전 65주년기념식’은 한산대첩과 더불어 통영을 구국의 승지로 표현하는 중요한 콘텐츠이자 해병대전우회라는 전국의 조직을 통영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이 될 것이며 이 행사에 더욱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한산대첩축제에 강력한 한 방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 강력한 한 방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제 그 한 방을 함께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