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 통영에서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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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수기자
작성일 13-09-12 15:55
작성일 13-09-1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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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시장 김동진)는 일본의 영화제작사 우즈마사(사카이 아쯔꼬 감독)를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오는 10월 ~ 11월 중 통영에서도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를 촬영하게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8. 20. 제주영상위원회는 “일본의 영화제작사 우즈마사(감독 사카이 아쯔꼬)에서 천재 화가 이중섭(1916~1956)과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93, 한국 이름 이남덕)여사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중섭의 아내』를 촬영한다.”고 언론을 통해 보도 하였다.
지난 6월부터 일본과 한국(부산)에서 이미 촬영을 시작했으며 오는 9. 15~ 9. 19. 까지 제주도 촬영을 위해 주연을 맡은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제주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제주에서의 촬영은 이 화백이 한국전쟁 직후 피난 와 살았던 서귀포 바닷가, 이중섭거리, 이중섭미술관 등에서 이루어진다. 이 영화는 올 11월까지 촬영한 후 내년 3월 시사회를 거쳐 같은 해 9월 일본과 한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결혼식 장면 (조선 전통혼례)
이 보도를 접한 <통영과 이중섭>의 저자이며 통영시 기획예산담당관실에 근무하고 있는 김순철 기획계장은 통영촬영이 누락된 사실을 인지하고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제작사와 감독을 검색한 후 지난 8. 22. 전화와 메일을 통해 이중섭의 통영생활의 중요성을 예로 들며 통영촬영을 요청하였다.
8. 23. 사카이 감독은 “이번 영화는 어디까지나 여성의 시점에서 역사의 격동기에 역사의 거센 파도에 농락되면서 끝까지, 93세가 된 오늘까지 사랑을 관철한 여성을 그리고 싶다. 제주도는 부부의 추억이 많은 곳이며 부인께서 마지막으로 꼭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다는 소원에 따라 촬영하기로 했다. 연세 때문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까지 통영 촬영은 예정하지 않고 있다.”는 짤막한 답장을 보냈다.
이에 포기하지 않고 8. 28. 재차 이중섭의 인생에서 가장 작품 활동이 왕성했던 통영생활을 촬영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작품이 될 수 없다며 통영촬영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편지와 함께 김동진 통영시장의 서한문을 비롯한 이중섭의 통영생활, 이중섭의 흔적, 이중섭과 교유했던 통영의 예술인들, 통영시절의 작품 등 많은 자료를 송부하였다. 한편 제주영상위원회에도 이중섭의 통영생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일본 제작진을 설득해줄 것을 적극 요청하였다.
이에 사카이 감독은 제작진과 수차례 회의를 거듭한 결과 이중섭의 통영생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통영촬영을 최종결정하였다며 지난 9. 4. 오히려 영화제작에 관심 가져 주어 고맙다는 내용의 답변을 보내왔다.
물론 이남덕 여사의 통영방문 여부와 정확한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통영을 대내외에 홍보하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국내도 아닌 외국 영화감독을 설득한 것은 큰 성과라 할 것이다.
통영시에서는 오는 10월 ~ 11월 경 통영촬영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중섭 화백과 인연이 있는 통영 최초의 서양화가 김용주의 부인 이경연 할머니,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장, 박종석 서양화가 등과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이 외도 가능한 통영촬영이 많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중섭이 기거했던 경상남도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를 비롯하여 이중섭거리, 이중섭․ 유강렬․ 전혁림․ 장윤성 등 4인전이 열렸던 옛 녹음다방, 40여 점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었던 성림다방, 남망산공원, 복자네집, 동충 등 곳곳에 묻어 있는 그의 흔적을 소개할 예정이다.
내년 이 영화가 일본과 한국에서 개봉되면 한류의 남풍을 타고 일본관광객들이 대거 통영을 찾을 것이며 이중섭과 통영의 상관관계를 몰랐던 한국의 많은 미술애호가들 역시 작가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통영으로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출생하여 1945년 5월 마사코(이남덕)와 결혼한 후 6.25동란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그의 아내와 태현, 조카 영진을 데리고 부산으로 남하하였다. 1951년 제주도로 건너가 약 10개월의 제주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부산으로 되돌아온 이후 이듬해인 1952년 7월 이남덕 여사가 두 아들을 데리고 제3차 귀환선 편으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때 이중섭은 경상남도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주임강사로 있던 동향인 염색공예가 유강렬의 권유로 통영으로 오게 된다.
1952년 봄 통영으로 온 이중섭은 1954년 봄 진주를 거쳐 서울로 갈 때까지 경상남도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기거하며 아이들에게 데생을 가르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마음의 평정을 찾아 작품 활동에 몰두하였다. 그해 12월 유강렬, 전혁림, 장윤성, 이중섭 등 4인회를 조직하고 녹음다방에서 4인전을 개최한 이후 이듬해 1953년 10월 경 통영에서 그린 작품 약 40여 점으로 성림다방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통영에서 일본의 아내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며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곧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고 초대 민선 충무시장이었던 김기섭, 재력가 김용제 같은 재력가와 김용주와 같은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흰소’를 비롯한 그의 수많은 대표작을 완성함으로써 통영생활은 그의 르네상스였다.
이중섭은 1952년 당시 시인 구상의 도움으로 지삼만에게 부탁하여 선원증을 발급받아 동경으로 건너가 아내와 아들을 극적으로 만나고 1주일 만에 돌아왔다. 재차 일본의 아내에게 가려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결국 1954년 통영을 떠나 진주를 거쳐 서울로 간 이중섭은 1956년 나이 마흔에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