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상륙작전’ 지휘관 김성은 장군, 호국인물 선정 > 지역뉴스

본문 바로가기
  • 2026년 05월 25일 (월요일)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정치/사회

문화/예술

지역뉴스

문화/교육 ‘통영상륙작전’ 지휘관 김성은 장군, 호국인물 선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종수기자
작성일 14-08-08 13:23

본문

통영상륙작전지휘관 김성은 장군, 호국인물 선정

귀신잡는 해병의 신화 만든 통영상륙작전 중요 전생사로 부각

01_MG_3647.JPG


귀신 잡는 해병대란 칭호를 얻게 한 통영상륙작전의 지휘관 김성은 장군이 한국 전쟁기념관으로부터 8월의 호국의 인물로 선정돼 해병대통영상륙작전이 역사의 한 전환점으로 새로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 7일 한국 전쟁기념관은 호국 추모실에서 김성은 장군의 장남 김영환 유족에게 호국의 인물패를 전달하고 현양행사와 추모행사를 거행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성은 장군과 함께 통영상륙작전에 참여했던 703호 이성호 함장과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이 90세에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참석했으며 전국 해병전우회 300여명과 더울어 통영상륙작전기념관정용원 관장과 황순봉 운영위원장이 강혜원 통영시의장의 조화를 현화하고 분향했다.

김성은 장군의 호국의 인물 선정은 통영으로써는 큰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해병대를 지칭할 때 귀신 잡는 해병대라고 하는데 이 수식어는 6·25당시 한국군 최초의 단독작전이고 해병대 최초의 상륙작전일 뿐 아니라, 이 승리로 인해 6·25 전쟁을 역전시키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통영 한산대첩과 더불어 한국 전쟁사에 큰 의미를 가진다.

김성은장군3.gif

김성은 장군

김성은 장군은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으며 해군병학교 졸업으로 소위로 임관했고 만 28세에 장군(준장)으로 임명 되었다. 또한 가장 오래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통영상륙작전은 물론 영덕·안동지구작전, 홍천·가리천·화천지구 전투 등에서도 전공을 세웠고 1951년 태극무공훈장, 미 은성무공훈장과 미 공로 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북한군을 전주, 함양, 진주 등에서 저지시켰고, 부산 공격을 위해 진동지구를 점령한 북한군 제 6사단을 기습 공격하여 적 200여명을 사살했다.

이후 19508월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이 완고하게 저항하자 북한군은 마산, 진해, 부산을 우회해 공격하고자 북한군 7사단이 통영을 점령케 했다. 이에 김성은 장군은 거제도를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하다 통영을 직접 상륙하여 소탕작전을 펼칠 것을 상부에 다시 건의하여 당년 817일 원문고개와 망일봉으로 나누어 상륙작전을 통한 기습공격을 감행해 통영을 재탈환 하는데 성공했다.

이 승리로 남측의 마지막 보류였던 진해 해군과 부산 공격을 위한 북한군의 거제도 포병 진지 구축을 사전에 봉쇄함으로써 역으로 한국군의 반격의 교두보를 만들었다.

이 전투를 취재하던 당시 뉴욕타임즈의 외신기자 마거릿 히킨스는 귀신도 잡을 만큼 놀라운 일을 해냈다.”는 찬사로 전 세계에 기사를 타전했고 이로써 한국 해병에게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런데 이 신화가 통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정작 통영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 전쟁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만약 해병대 통영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6.25 전쟁의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고 있다. 해병대가 통영에서 적을 막지 못했다면 인민군 7사단은 진해와 부산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포병부대를 거제도에 주둔시켰을 것이고, 거제에서 완전한 사정거리가 되는 부산은 물론 당시 임시정부와 진해, 마산, 부산의 수천만 피난민들의 피해는 충분히 상상이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전투는 임진왜란을 반전시킨 한산대첩과 유사한 면이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은 한산대첩이 견내량에서 시작되었듯이 통영상륙작전도 견내량(장평리)에서 시작되었다.

적을 속인 작전 또한 유사하다. 이순신은 적선을 넓은 곳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작전을 펼쳤고 김성은 장군은 거짓 포 공격으로 적들을 통영시내로 유인시켜 견내량을 통해 망일봉과 원문고개를 장악하고 적을 가두는 전술을 구사했다.

한산대첩의 승리는 조선 육군의 사기를 북돋우고 육군이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과 명나라 군이 조선에 무사히 들어 올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었다. 통영상륙작전의 승리는 맥아더장군이 준비하고 있던 인천상륙작전의 자신감이 되었다. 또한 맥아더 장군은 이 전투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해병을 차출해 인천상륙작전의 선봉대로 투입시켰고 이들은 9.28 서울수복작전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김성은 장군은 이순신장군을 떠올리며 전쟁에 임했다고 회고록을 통해 말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충렬사와 세병관 그리고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까 폭발하지 않는 무쇠탄을 사용해 적을 교란만 시키고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해병대의 실제 투입으로 적을 장악했다.

그가 이순신의 후예였음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는 통영을 재 탄환하고 부하들과 제승당을 찾아 이순신 장군께 승리에 감사하는 절을 올렸다고 한다. 더 재밌는 것은 한산대첩의 전사자가 19명인데 통영상륙작전의 전사자도 19명이다. 통영상륙작전에서 전사한 해병들은 현재 용남면 두타사 해병의 집에 모셔져 있다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매월 8월 한산대첩축제와 더불어 전국 해병과 유족 현역들이 통영지구전투전적비 아래 모여 통영상륙작전 전승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1817일 원문공원에 개장한 해병대통영상륙작전기념관’(관장 정용원

Copyright © 통영문화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