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통영성 남문 받치던 성벽 윤곽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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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5-03-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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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성과 남문을 받치던 성벽 윤곽 드러나
너비 8.7M로 내부는 작은 돌들로 채워져
통영성 정비사업 중의 일환으로 통제영거리조성사업과 남문지 복원사업계획이 시작되면서 통영성의 4대문 중 가장 큰 문이었던 남문의 궁금증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통영시가 경남문화재연구원에 해당지역에 대해 2013년 표본조사를 의례하여 통영성의 체성과 주변 건물지들이 확인되어 정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정밀조사 구역은 문화동 172-4번지 일원으로 3구역으로 나누어 실시되었으며 발굴조사 구역은 아래 사진에서 보는 창동 1길 중앙로와 세병로가 교차하는 사거리 일원이다.


통영성 남문의 윤곽은 서포루 인근 배수지로 오르는 도로에서 중앙시장을 향하는 방향으로 이어져 있으며 이는 동포루와 연결된다. 사거리 인근 건물지하에서 통영성의 남문지 육축으로 판단되는 석열이 확인 되었으며 너비는 8.7M로 내부는 작은 돌들로 채워져 있다.
중앙로와 세병로 창동 1길이 만나는 사거리가 통영성 남문의 자리로 가장 유력하지만 성벽과 관련된 흔적은 모두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다. 하지만 잔존하고 있는 육축 석열은 동쪽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 통영성의 윤곽을 추측하게 한다.
옛 봉래극장이었던 공용주창에는 조선후기로 추정되는 건물지의 흔적들이 발견 되었으며 통영성의 성벽을 따라 일제강점기 매설한 배수관로와 근대에 매설한 오수관(콘크리트)과 통신관 들이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사적 402호로 지정된 통제영지는 고종 32년(1895) 폐영 되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통영성내에 일반 주민들이 집을 짓고 살면서 4대문과 성곽이 서서히 소실되었으며 통영성을 이루고 있던 성곽의 돌들은 새집을 짓는 건축 자재나 통영 해안 매립에 사용되었다는 추측이다.
이번 발굴로 통제영지 발굴과 통제영 거리조성 사업에 큰 방향이 제시 되었지만, 문제점은 아주 많다. 아직 인근 주민들과 보상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발굴 작업에 어려움이 예상될 뿐아니라, 인근을 지나는 전선과 통영시 상수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배수지와 직접 연결된 배수관로 오수관 등의 변경이 불가피해 보여 이런저런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